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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여드름 브레이크' 상금 300만원, 사실은...

20일, MBC <무한도전>에서는 '여드름 브레이크' 편을 방영했다. 출연자들이 형사와 죄수로 나뉘어서 상금 300만 원을 얻기 위해 서울 각지를 돌며 추격전을 벌이는 내용이었다. 당초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패러디물 정도라 생각했던 <무한도전>의 내용은 알고보니 예능의 유쾌함 속에 사회적 교훈을 담고 있었다.

 

  
무한도전 '여드름 브레이크'편이 시청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 MBC
여드름 브레이크

우선, 배경 속에 숨은 교훈이 있다. 촬영 장소였던 회현 시민(시범) 아파트, 연예인 아파트, 오쇠동 마을은 철거 위기를 맞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화면은 철거와 재개발로 신음하는 우리 이웃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무한도전>의 화면을 보면 문득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이 떠오른다. 무리한 공권력 투입으로 인해 화재가 나고, 그로인해 국민이 죽음을 당한 우리 사회의 비극. 하지만 죽은 국민들은 적절한 보상과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비극스런 사건이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 침전물처럼 남아 약육강식 사회의 추악한 치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무한도전>에서 철거촌과 재개발 지역을 촬영 장소로 삼은 것은 분명 의미 깊은 일이다.

 

특별한 사연이 담긴 <무한도전> 촬영 장소

 

예능 속 배경이 된 촬영 장소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시켰다. 그리고 급기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촬영 장소였던 오쇠동, 연예인 아파트 등은 포털 인기 검색어에 올랐고, 각 촬영 장소의 안타까운 사연들은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됐다. 그렇기에 <무한도전>은 '철거민들의 애환'에 대해 진실의 눈을 뜨게 만들어 줬다는 평가를 내리기에 충분했다.

 

돌이켜본다. 사실 <무한도전> '여드름 브레이크' 촬영 장소는 내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 곳이다. 지난 겨울 시민아파트, 연예인아파트, 오쇠동 마을을 두루 돌며 취재를 했었기 때문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걸어갔던 길을, 다른 누군가 똑같이 걸어갔다는 것은 왠지 모를 설렘과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그것이 많은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무한도전>이라 더욱 그랬다. 다행히 그 기대와 설렘은 틀리지 않았다. 무한도전 덕분에 많은 시청자들이 시민아파트, 연예인아파트, 오쇠동 마을의 가슴 아픈 사연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철거촌을 거닐던 <무한도전> 출연진의 마음도 나와 같았을 것이라고, 덕분에 그동안 잊고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취재 당시 만났던 철거민들의 안타까운 사연 말이다.

 

[회현 시민아파트] 시설물 D등급의 서울 같지 않은 서울

 

 

  
무한도전의 '여드름브레이크'의 촬영장소였던 회현 시민 아파트
ⓒ 곽진성
회현 시민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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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2008년 12월, 겨울의 일이다. 당시 난 휴학생으로 오마이뉴스에서 실시하는 대학생 기사공모전을 준비했었다. 그리고 그때, 취재하겠다는 일념으로 회현 시민 아파트, 연예인 아파트, 그리고 오쇠동 마을을 찾았다. 어떤 일들이 있을지, 얼마나 마음 아파할지도 모른 채 호기로움만 믿고 말이다.

 

'여드름 브레이크'의 초반 촬영지였던 회현 시민아파트. 내가 그 장소를 찾았던 것은 지금부터 반년 전인 2008년 12월 6일 새벽이었다. 당시 새벽 찬공기를 마시며 현장을 찾아갔었다. 하지만 처음 본 시민 아파트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높이 솟은 구름 다리와 밑으로 보이는 아찔한 절벽, 균열이 생긴 낡은 아파트의 모습. 서울에 이런 곳이 있나 놀라고 말았다. 내눈에 비친 회현 시민 아파트는 현재가 아닌 듯했다. 1960년대 서울의 어느 한 부분처럼 보였다.

 

그 당황스러움 저편으로 보였던 것은 위험 시설물 D등급이라는 경고 문구와 적은 보상비로 신음하는 주민들의 모습이었다. 그 중 한 시각 장애인 아주머니와의 만남은 내게 가슴 아린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아주머니는 시민 아파트에서 언제 쫓겨날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다.

 

시각 장애인 열명이 오순도순 모여 살았다는 회현 시민 아파트, 하지만 적은 보상비용을 받고 일부는 이미 그곳을 떠났고, 나머지 사람들도 쫓겨날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사연에 마음이 쓰렸다. 그런 아주머니를 보며 내가 옆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단지 "힘내세요"라는 말뿐이었다.

 

[연예인 아파트] 그때 찍은 누나 사진, 어떻게 주지?

 

  
무한도전 '여드름 브레이크' 촬영 장소였던 연예인 아파트
ⓒ 곽진성
연예인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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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 시민아파트와 더불어 연예인 아파트의 모습도 방영되었다. 연예인 길이 아파트 215호에서 박명수, 노홍철, 정준하, 전진 등의 출연진들에게 힌트를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연예인(동대문) 아파트다.

 

내가 연예인 아파트를 찾았던 것은 2008년 12월 2일의 일이다. 당시 취재차  연예인 아파트에 들렀는데 도심 속 오래된 아파트에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홍콩 느와르 영화를 찍으면 딱 어울리는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에 말 문이 막혔었다.

 

그런데 그 오래된 아파트의 모습보다 더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것은, 연예인 아파트 주민들이 수도 요금 1500여만 원을 못내 단수 위기에 벌벌 떨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그 가난이, 없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냉정한 이 사회가 문득 무서워졌다. 하지만 주민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무엇인가 일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이던 주민들의 모습.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서 한 여성을 만났다. 나보다 10살은 나이가 많아 보이던 누나였다. 그런데 그 누나는 동대문 아파트를 촬영 하던 필자를 보더니 수줍게 사진 한 번 찍어줄 수 있냐며 부탁을 했다.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당시 난  흔쾌히 그 누나의 사진을 찍어줬다. 그리곤 사진을 보내주겠다며 이메일 주소를 물었었다. 하지만 이메일도 없고 컴퓨터도 없다는 그 누나의 대답에 난 무슨 말을 이어야 할지 몰랐다. 내 안타까운 마음을 그녀는 알았을까? 마냥 밝게 웃고 있던 그 누나의 모습이 아직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오쇠동 마을] 취재해서 상도 받고 상금도 탔지만...

 

  
무한도전 '여드름 브레이크'의 촬영장소였던 오쇠동 마을.
ⓒ 곽진성
오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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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출연진들이 상금 300만 원이 숨겨진 우물을 찾기 위해 땅을 파며 혈투를 벌이던 장소, 오쇠동 삼거리이다. 그곳은 아픈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자신의 터전에서 쫓겨난 오쇠동철거민(세입자)들의 이야기는 눈물 겨웠다.

 

2008년 12월 17일. 무작정 오쇠동 마을을 찾아가 취재를 진행했었다. 계획에 없던 취재였던 만큼 내용도 잘 구해지지 못했다. 그런데 다행이었다. 비행기들의 자지러지는 굉음과 버려진 주택가에서,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기 대문이다. 몇 남지 않은 오쇠동 주민이었다. 나이가 많았지만 너무나 순박했던 아저씨.

 

그는 낯선 이방인이 못 미더울 만도 했건만 너무나 친절하게 오쇠동의 역사,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큼지막한 태극기가 걸려있는 집에 개  한마리와 사는 웃고 있었지만, 쓸쓸함이 엿보였다. 친구들이 이미 터전을 다 떠났기 때문이다. 그 역시 이주 보상비 300만 원을 받고 다른 곳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단돈 300만 원에 고향도 잃고, 친구도 잃고, 희망마저 잃은 셈이다. 

 

회현 시민아파트, 연예인 아파트, 오쇠동 취재의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공모전 결과 '최우수상'을 타고 적잖은 상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의 씁쓸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적은 보상비로 쫓겨나야할 철거민들이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다.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낫게 바꿔 보겠다' 젊은 혈기를 믿고 열심히 기사를 썼지만, 글 하나로 바뀔만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철거촌 사람들의 열악한 여건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사회의 약자들에게 큰 힘이 되지 못했다. 무력감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었다. 어려운 사정을 토로했던 사람들에게 나는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자기 위안일 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반년이 지난 지금, 궁금했다. 시민아파트, 연예인 아파트, 오쇠동의 그 사람들. 그들은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있을까? 혹여 떠났다면 새로운 보금자리에 무사히 자리잡았을까? 내 마음은 오랫동안 먹먹했었다.

 

고맙다 <무한도전>, 기적을 만들어줘서

 

  
무한도전 '여드름브레이크'의 오쇠동 마을을 보고 문득, 예전 취재때 만났던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는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있을까?
ⓒ 곽진성
오쇠동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잊혀졌던 그 사람들이, 다시금 기억 속에서 생생히 떠올랐다. 무한도전 덕분이었다. 

 

회현 시민아파트 나왔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우연히 나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연예인 아파트, 그리고 마지막에 오쇠동 삼거리까지 이어진 <무한도전>의 여정은 감동을 전해줬다.

 

그제서야 무한도전이 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무한도전>은 '여드름브레이크'를 통해 우리 사는 세상, 대한민국에 철거로 인해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감동을 받은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닌 모양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장소들에 얽힌 숨은 의도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촬영 장면 하나하나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가령, 박명수가 다쳤던 철조망은 오쇠동 주택을 철거한 후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는 사실, 또 '여드름 브레이크'의 상금 300만 원은 오쇠동 세입자들의 이주 보상비와 같다는 사실. 이 진실에 놀라는 시청자들이 참 많았다.

 

지금에서야 이 기사 전문을 다 읽었는데… 읽는 내내 울컥해서 눈물이 와락 쏟아질것 같았지만 참았습니다… 원래 이렇게 감성이 예민한 편은 아닌데… 그냥 죄없는 그 네 남매가 너무 가엽기도 하고… 가슴아프고 안타깝고…. 이런 사실도 미처 모르고 나 혼자 아무렇지 않게 살아왔구나도 싶네요. 용산참사때도 그렇고. 왜 이렇게 우리나라는 그나마 모자랄것 없이 잘사는 사람들이 정말 어렵게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까지 전부 빼앗아가려할까요. 대체 이분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말입니다. (daum 기사댓글 한반도)

 

철거민에 관한 씁쓸한 진실이 개념있는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과 만나자 폭발력을 일으킨 것이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큰 선물이었다. 즐거운 예능과 함께, 회현 시민(시범) 아파트, 연예인 아파트, 오쇠동등,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철거 지역의 아픔에 대해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한도전>은  내게도 큰 선물을 준 것 같다. 연예인 아파트의 위치를 몰라 검색을 하던 유재석씨가 내가 전에 썼던 기사(1960년대 여기가 연예인 아파트였지)를 보고 연예인 아파트를 알아낸 것이다. 또 <무한도전> 시청자들이 오쇠동 마을의 사연을 알기 위해 반년 전에 썼던 내 기사에 광클릭을 했고 마음 따뜻한 댓글을 달아줬다.

 

기사 쓴 지 반년 만에 댓글 60여 개, 그보다 중요한 건...

 

무한도전 덕분에 빛 본 기사 읽기

 

덕분에 댓글이 단 하나였던 기사는, 무려 반년이 지나서 60개 넘는 댓글이 더 달리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댓글은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났던 기사가 무한도전 덕분에 생명력을 부여받고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 앞에 작은 위안이나마 된다. 내 기사가 '철거촌 사람들의 열악한 상황'을 알리는데 조금이나마 이정표 역할을 했다는 사실 말이다. 덕분에 친구들한테도 반가운 인사를 받았다.

 

"진성아. 오늘 무한도전 보고 니 오쇠동 기사가 생각났어"

"학교 홈페이지에 무한도전 오쇠동 기사가 올랐는데. 알고보니 진성씨 기사였네요" 

 

마음 속에서는 다시금 작은 기대가 솟아난다. 약자에 대해 배려하고 관심을 갖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희망 말이다. <무한도전>의 '여드름 브레이크' 는 그 희망을 조금이나마 현실로 만들어줬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시민 아파트에서 시름에 잠겨있던 시각장애인 아주머니. 사진 한번에 너무나 밝게 웃던 연예인 아파트 누나. 그냥 집에 보내기 뭐하다며 내 봉창에 오미자 한웅큼 넣어줬던 오쇠동 마을의 아저씨. 지금 그들은 이 험난한 이 세상에서 용기있게 살아가고 있을까? 

 

두 손 모아 바란다. 철거촌의 열악한 상황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적은 보상비에 신음하는 철거민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부디 그들이 작은 용기나마 냈으면 한다. 그렇기에 <무한도전> '여드름 브레이크' 편에 정말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사회의 가려진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번 무한도전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출처 : oh my news -